“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으며 오직 영원한 이익이 있을 뿐이다” 라는 서양 속담이 있다 그러므로 비록 씻지 못할 원한이 있더라도
지금 나에게 꼭 필요하고 큰 이익을 가져다 주는 인재라면 대임을 맡기지 못할 이유가 있겠는가?
명나라 만력(萬曆) 10년 9월, 누르하치(淸 太祖)가 대군을 거느리고 웅과락성을 공격하며 자신은 직접 높은 곳에 올라가 전쟁을 독려하고 있었다. 전투가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을 때, 옹과락성을 지키던 악이과니라는 장수가 몰래 화살을 날려 누르하치의 다리를 명중시켰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은 채 피 묻은 화살을 뽑고는
계속해서 전쟁을 지휘했다. 이때 나과라는 용사가 짙은 안개를 틈타 살금살금 누르하치 가까이
접근하여 그의 목에 화살을 적중시켰다. 다행히 급소는 빗나갔지만 화살을 뽑자 피가 솟구쳐 누르하치는
그만 기절하고 말았다. 누르하치 군대는 하는 수 없이 군대를 물려 퇴각했다. 누르하치의 상처가 모두 아물자 재차 옹과락성 공격에 나서 성을 함락하고 누르하치를 쏘아 맞힌 악이과니와 나과를 생포했다. 장수들은 이를 부드득 갈며 이놈들을 묶어 놓고 화살로 벌집을
만들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누르하치는 냉정을 유지한 채 두 용사의 용맹을 극찬하며
자신의 수하로 거둘 뜻을 밝혔다.
"전투의 궁극적인 목표는 승리이다. 그래서 저들은 자신의 주인을 위해 나에게 화살을 쏜 것이니, 내가 지금 저들을 중용한다면 나를 위해 적에게 화살을 쏘지
않겠는가? 이렇게 용감한 장수들을 죽음으로 내몰기는 너무 아깝도다!" 이렇게 말하고는 직접 그들의 포승줄을 풀어주며 좋은 말로
위로했다. 이에 악이과니와 나과는 감동하여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누르하치에게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했다. 누르하치는 그들을 우록액진에(牛錄額眞) 임명하고 각각 300명의 장사를 통솔하도록 했다. 훗날 그들은 전쟁터에 나가 용감하게 싸워 누르하치가 통일 대업을
이룩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누르하치는
이처럼 원한을 맘에 담아 두지 않고 적들을 용서하여 친구로 만들었다. 이로써 부하들에게 넓은 아량을 갖추었다는 칭송을 들었을 뿐만
아니라, 여진 부락 사이에서 명성을 얻고 적진의 인재들까지 감동시켰다. 이런 포용력은 누르하치가 미약한 힘으로 여진 부락을 통일하는
결정적 힘이 되었다.
그렇다면 역사상 걸출한 정치가들이 개인적 원한을 잊고 원수를
중용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자세히
분석해 보면 이치는 매우 간단하다.
바로 '용인(用人)'의 출발점을 '덕망과 재주의 구비'에 두었기 때문이다. 덕망이나 재주가 있다면 사사로운 이익 때문에 그를 버리지 않는
법이다. 대업을 이룬 용인의 대가들은 하나같이 개인의 은원이나 감정
따위에 얽매이지 않고, 다만 재능의 유무에만 관심을 두었다. 특히 자신과 적대 관계에 있거나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을
대담하게 중용한다면 이는 도량이 넓고 공평무사하며 인재를 갈망한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 주는 것이므로 뛰어난 인재가 앞 다퉈 달려오게 될
것이다.